자기장 감지는 철분이 있어야 가능한가?
자기장을 인식하는 생물은 흔히 철 기반 구조를 지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철을 함유한 마그네타이트 결정체가 방향을 감지하거나 이동 경로를 설정하는 데 활용되는 사례는 조류, 어류, 박테리아에서 보고된다. 하지만 최근, 철 함량이 극히 낮은 생물에서도 외부 자기장 변화에 반응하는 행동이 관찰되며, 비자성 생물체 내부에도 일종의 '미세 자기 나침반'이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비자성 생물의 자기 민감성 관찰
2022년 영국 맨체스터 대학의 연구팀은 선충(C. elegans)을 자기장 차폐실에서 배양하고, 이후 자장을 인위적으로 변화시킨 환경에 노출시킨 실험을 진행했다. 놀랍게도 일부 선충은 일정한 방향성을 유지하며 움직였고, 이 반응은 세포 내 철 농도와 무관하게 나타났다.
이와 유사하게, 철 기반 저장소가 없는 해양 플랑크톤의 일종에서도 자기장 변화에 따라 집단 회전 행동이 나타나는 것이 보고되었다. 이는 기존의 자기 수용체 이론을 넘어서는 새로운 생물학적 구조가 작용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미세 자기 나침반 단백질의 가능성
비자성 생물에서 자기장 반응이 가능하려면, 세포 내부에 자기장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극도로 민감한 단백질 구조가 필요하다. 최근 단백질 물리학에서는, 자성 나노구조와 유사한 전자 밀도 분포를 가진 단백질 접힘 구조(folding motif)가 자장을 감지할 수 있다는 가설이 제안되었다.
이러한 단백질은 전하 분포 비대칭성, 극성 아미노산 배열, 특정 수화각(water shell angle)을 통해 미세 자기력선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으며, 이 구조가 극미한 회전 혹은 진동 형태로 전환되어 세포 반응을 유도할 수 있다.
전자파 기반 생물 감각 구조
철이 없는 생물체가 외부 자장을 감지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메커니즘은 전자파 간섭이다. 일부 생물은 특정 주파수 대역의 전자파에 반응하며, 이는 이온 채널의 개폐나 막 전위 조절로 연결될 수 있다. 특히 TRP 채널이나 Piezo 계열 이온 통로는 저주파 자기장에 대한 민감성을 나타낸다는 보고도 있다.
이러한 반응은 기존의 마그네타이트 기반 나침반과는 전혀 다른 생물물리학적 체계이며, 전자파와 생체 단백질 사이의 상호작용 연구가 본격화되고 있다.
응용과 미래 전망
비자성 생물의 자기 민감성을 규명하는 연구는 인공 자기 센서 개발에 있어 새로운 모티프를 제공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전자기 민감 단백질 구조를 모사해 저전력 생체 센서를 설계하거나, 살아있는 생물의 행동 분석을 통해 지구 자기장 변화를 감지하는 바이오마커로 활용할 수 있다.
또한, 자기장을 이용한 신경자극, 방향치료(magnetotherapy), 나노 자성 약물 전달 기술 등 다양한 분야에 적용 가능한 생체기반 플랫폼이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맺음말
철이 없다고 해서 자기장을 감지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생명은 전기적, 자기적 현상을 매우 미세한 수준에서 감지하고 활용하는 구조를 진화시켜 왔다. 비자성 생물의 자기 감각 구조는, 생명체가 어떻게 물리적 세계의 미세한 힘까지 감각하고 반응하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