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자급자족이라는 말은 나와는 거리가 먼 단어처럼 느껴졌다. 내가 사는 곳은 작은 도시,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집이고, 텃밭은커녕 베란다마저 좁은 편이다. 그런데도 어느 순간부터 자꾸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매달 장을 볼 때마다 오르는 식재료 가격에 놀라고, 배달을 시킬 때마다 늘어나는 플라스틱 포장 쓰레기에 눈살을 찌푸리게 되면서, 문득 이 모든 소비의 흐름에서 조금쯤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아주 작게, 정말 사소한 한 가지 행동으로 시작하게 된 것이 바로 자급자족이었다.
도시 자급자족
도시에서 자급자족을 한다는 것은 대단한 무언가를 일컫는 게 아니다. 내가 직접 기르고 만든 것만으로 모든 생활을 영위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내가 사용하는 것 중 일부라도 내 손으로 채우는 생활을 말한다. 예를 들어, 늘 마트에서 사던 상추나 깻잎을 베란다 화분에서 직접 키워보는 것, 쌀뜨물이나 채소 껍질처럼 평소라면 그냥 버렸을 주방 자원을 화분에 주는 비료로 다시 활용하는 것, 커피 찌꺼기를 말려서 탈취제로 쓰는 것, 이런 행동 하나하나가 도시에서 할 수 있는 자급자족의 시작이었다.
가장 먼저 실천한 건 먹거리 자급이었다. 채소는 생각보다 키우기 쉬웠고, 특히 상추나 깻잎, 청경채 같은 쌈채소는 초보자도 금방 수확할 수 있어 만족감이 컸다. 베란다에 작은 플라스틱 화분을 놓고, 흙을 조금 담고, 마트에서 산 모종을 심었다. 해가 잘 드는 자리라 그런지 물만 꾸준히 주었을 뿐인데도 금세 잎이 자라났고, 며칠 지나지 않아 첫 수확을 할 수 있었다. 그날 저녁, 마트에서 산 고기 한 점에 내가 키운 상추를 곁들여 쌈을 싸 먹었을 때 느낀 그 감동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깊었다. 단지 한 장의 상추였지만 그 안에는 내가 물을 주고 지켜본 시간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음식물 쓰레기 재활용 자급자족
그 다음으로 도전한 건 주방에서 나오는 음식물 쓰레기의 재활용이었다. 원래는 채소 껍질이나 달걀 껍데기, 바나나 껍질, 커피 찌꺼기 같은 것들을 별 생각 없이 음식물 쓰레기로 버렸지만, 자급자족에 대해 공부하면서 이런 것들이 좋은 천연 비료로 사용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부터는 커피 찌꺼기는 햇볕에 말려 베란다 화분 흙 위에 뿌렸고, 달걀 껍데기는 잘게 부수어 영양제로 활용했다. 이런 식의 순환은 내가 소비하는 자원을 다시 자연의 일부로 되돌리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었고,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양이 확연히 줄어든 것도 눈에 띄게 느껴졌다.
비슷한 맥락에서 천연 세제 만들기도 해봤다. 시중의 합성 세제를 줄이기 위한 시도였는데, 베이킹소다와 구연산, 식초만 있으면 꽤 다양한 세정 용도로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부터였다. 주방 싱크대의 기름때 제거부터 욕실 청소, 유리창 닦기까지 천연 재료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했고, 무엇보다 냄새나 잔여물이 남지 않아 사용하면서도 안심할 수 있었다. 화학 성분에 예민한 피부를 가진 사람이라면 더더욱 유용한 방법일 것이다.
또 하나 중요한 자급자족의 요소는 물과 에너지 사용에 대한 의식의 변화였다. 자급자족을 실천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전기와 물에 대한 소비도 돌아보게 되었고, 빨래 건조기는 쓰지 않고 햇볕에 자연 건조하는 습관이 생겼다. 베란다에 물통을 두고 빗물이 오는 날이면 받아 두었다가 화분 물 주기에 활용하는 식이었다. 물을 아껴 써야겠다는 마음이 생기니 샤워 시간도 자연히 짧아졌고, 음식 조리 시 사용하는 물의 양도 의식적으로 줄어들었다.
이렇게 하나하나 작은 실천들이 쌓이다 보니, 삶의 리듬 자체가 느리지만 단단하게 변해갔다. 소비에 집중하던 생활이 생산과 순환으로 옮겨졌고, 물건을 사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게 되었으며, 내가 쓰는 모든 것들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의식하게 되었다. 예전엔 버리는 게 당연했던 것들, 새로 사는 게 편하다고 여겨졌던 물건들이 이제는 다시 쓰고 고치는 쪽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하게 되었다.
도시에서 자급자족을 실천한다는 건 완벽함을 목표로 하는 일이 아니다. 다만 조금씩 삶을 내 손으로 만들어간다는 감각을 회복하는 일이었다. 마트에 가지 않아도 되는 식재료가 하나 생긴 것, 화학 제품 대신 직접 만든 세제를 쓰는 것, 커피 찌꺼기를 버리지 않고 재활용하는 것, 이런 작고 사소한 변화들이 쌓여 내 생활 전체를 바꿨다. 단순히 비용 절감이나 환경 보호를 넘어서, 삶의 만족도 자체가 높아진 것이다.
자급자족을 하면서 얻은 가장 큰 변화는 '불필요한 소비로부터의 해방감'이었다. 예전처럼 광고나 타인의 생활에 휘둘려 뭔가를 계속 사고 싶어 하던 마음이 줄어들고, 내가 가진 것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더 자주 들게 되었다. 소비보다 창조, 편리함보다 지속가능성, 빠름보다 단단함. 이 흐름을 따라 사는 일은 처음에는 낯설고 번거로웠지만, 어느새 내 삶에 가장 잘 맞는 방식이 되었다.
결론
오늘도 나는 베란다에서 자란 깻잎을 따서 밥상에 올린다. 따뜻한 햇살을 머금고 자란 그 깻잎 하나에 담긴 시간과 정성은 마트에서 파는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다. 작은 변화지만 내 삶은 분명히 달라졌다. 도시에서도 자급자족은 가능하다. 완벽하진 않아도, 충분히 의미 있다. 그리고 한 번 해보면, 누구든 그 매력을 알아차릴 것이다.